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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

by Meldi 2025. 3. 27.

 

음악사에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가곡의 왕(König des Liedes)’이라 불렸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서, 시와 음악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예술적 경지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생애, 작품, 특징, 일화를 통해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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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베르트의 생애: 짧지만 뜨거웠던 음악의 여정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교사였고, 슈베르트 역시 한때 교사로 일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가난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집은 늘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로 북적였고, 이 모임은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고 불렸다.

슈베르트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남긴 곡은 1,500곡이 넘었다. 그중 600곡 이상이 가곡(Lied)이었고, 이는 가곡 역사상 전례 없는 업적이었다.

 

 

2. 슈베르트 가곡의 특징: 시와 음악의 완벽한 조화

슈베르트 이전에도 가곡은 존재했지만, 그의 가곡은 여러 면에서 특별했다.

① 노래와 반주의 동등한 역할

이전 시대의 가곡은 반주가 단순히 멜로디를 받쳐주는 역할에 그쳤지만, 슈베르트는 피아노 반주를 시의 분위기와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마왕(Erlkönig)〉**에서는 피아노가 폭풍우 치는 밤의 말발굽 소리를 묘사하면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② 서정성과 극적 표현의 조화

슈베르트의 가곡은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도 극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았다.

  • **〈음악에 D.547(An die Musik)〉**에서는 음악이 주는 위로를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했다.
  • **〈들장미(Heidenröslein)〉**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서정성과 간결함을 함께 보여줬다.

③ 모음곡 형태의 가곡집(Liederkreis, Song Cycle)

그는 단순한 단편 가곡뿐 아니라 이야기가 이어지는 가곡집도 만들었다.

  •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Das schöne Müllerin)〉**에서는 청년의 사랑과 실연 과정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 **〈겨울 나그네(Winterreise)〉**는 사랑을 잃고 떠도는 남자의 쓸쓸한 여정을 노래하면서 슈베르트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냈다.

 

3. 슈베르트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

① 베토벤이 인정한 작곡가

슈베르트는 생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베토벤은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베토벤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친구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려줬고, 베토벤은 감탄하며 “이 청년에게서 특별한 무언가가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베토벤의 장례식에는 슈베르트도 참석했고, 그는 훗날 자신도 베토벤 곁에 묻히길 원했다. 실제로 슈베르트의 묘는 빈 중앙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묘 바로 옆에 자리잡게 됐다.

② 술과 친구를 사랑한 음악가

그는 매우 사교적인 성격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걸 즐겼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작곡을 이어갈 수 있었다. 친구들이 방을 빌려주고 생계를 도와줬기에 수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은 그런 우정과 자유 속에서 탄생했다.

 

 

4. 왜 그는 진짜 ‘가곡의 왕’인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들을 때면, 그의 음악이 지닌 감정의 깊이에 늘 놀라게 된다.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가사의 의미를 극적으로 살려내는 표현력은 듣는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시를 새롭게 해석해냈다. 피아노 반주마저도 주인공처럼 노래 속에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가곡의 왕’이라는 말은 단지 수식어가 아니라, 그의 음악적 깊이와 혁신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슈베르트의 가곡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고, 성악가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들으면 익숙하게 느낀다.

그의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고 있었고, 그래서 시대를 넘어 감동을 준다.

 

 

5. 결론

나는 반주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기 때문에, 슈베르트가 가곡에서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그의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워낙 많이 들어본 이름이고, 너무 클래식 교과서적인 느낌이 들어서 내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가곡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그의 음악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보니, 예전엔 단순히 익숙하게만 들렸던 멜로디들이 훨씬 더 풍부하게 느껴졌고, 그 안에 숨은 감정들과 구조가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반주를 공부한 입장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반주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노래와 대화를 주고받는 또 하나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감탄하게 됐다.

그의 가곡은 단순히 ‘노래’로 끝나지 않고, 시의 감정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내는 진짜 예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곡의 왕’이라고 부르는구나 싶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명예나 부를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가 더욱 빛나고 있다. 가곡을 좋아하든 아니든, 그의 음악을 한 번쯤은 깊게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마치 아주 오래된 편지를 꺼내 읽는 느낌이랄까. 익숙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음악에, 나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예술이여!”
– 슈베르트, 〈음악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