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나는 왜 음악을 계속하는가

by Meldi 2025. 4. 9.

클래식 음악가의 무대 뒤 이야기,

 

https://pixabay.com/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는 언제나 빛나 보인다. 조명이 내려앉고, 객석이 고요해지며, 악기에서 흐르는 선율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그 순간. 하지만 그 짧은 공연 뒤에는 수많은 준비와 수고가 숨어 있다. 화려한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클래식 음악가의 하루는 무대 밖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우선, 무대에 오르기 전의 준비 과정은 단순한 연습 이상의 것이다. 연주자는 단순히 음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분석하고, 해석을 고민하며, 스타일에 맞는 터치와 프레이징을 만들어낸다. 한 마디를 수십 번 반복하며 손끝의 감각을 익히고, 숨 쉬는 타이밍까지 계산해야 한다. 특히 협업이 필요한 반주자나 앙상블 연주는 각 파트 간의 호흡이 무대의 완성도를 결정짓기 때문에, 리허설과 사전 소통이 필수적이다.


나는 반주자로 무대에 서는 일이 많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연주자와 함께 곡을 분석하고, 호흡을 맞추고, 실전에서 생길 변수까지 준비하는 조율자에 가깝다. 연습 도중 연주자의 템포나 해석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차분해야 한다는 것. 긴장한 연주자에게 음악적으로 ‘안전한 바닥’을 제공하는 것이 반주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공연 당일은 생각보다 빠듯하게 흘러간다. 리허설에서 음향과 악기 상태를 점검하고, 홀의 울림을 파악한 뒤, 짧은 휴식 후 바로 공연에 들어가는 일이 많다. 때로는 리허설에서 문제가 없었던 피아노가 갑자기 울림이 달라지거나, 홀의 조명이 바뀌어 악보가 잘 안 보이는 상황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클래식 무대는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대 위의 음악은 결코 ‘즉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고 완벽할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자연스러움은 수많은 반복 연습과 실패, 수정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악보 한 장을 익히기 위해 며칠이 걸리는 일도 있고, 완벽하게 암보했던 곡이 무대에서 갑자기 흐릿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음악가들은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고,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나는 그런 과정 속에서 비로소 클래식 음악가의 진짜 모습을 본다. 사람들의 박수는 무대 위의 연주자에게 향하지만, 그 연주자 역시 무대 밖에서 수없이 고뇌하며 자신과 싸운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무대에 서기 전에 늘 다짐한다. 누군가의 몇 분을 감동시키기 위해, 나는 매일 몇 시간을 준비한다고.

클래식 음악은 느리다.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을 버티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 쌓아 올린 음악은, 오래도록 남는다. 무대 뒤의 시간들이야말로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음악을 업으로 살아가는 삶은, 단순히 ‘좋아하는 일’ 이상이다. 음악은 내게 늘 아름답지만, 때로는 깊이 외롭고 어렵기도 하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건 어릴 때였고, 비교적 자연스러웠다. 피아노가 재미있었고, 소리가 신기했다. 그러나 음악이 ‘일’이 되고, ‘책임’이 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매일 연습해야 하고, 기한 내에 곡을 외워야 하고,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손가락뿐 아니라 마음까지 훈련해야 했다. 음악은 들을 때보다 만들 때가 훨씬 복잡하고 예민한 예술이었다.

무대에 서는 일은 항상 긴장된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악보가 날아가거나, 손이 얼어붙거나, 순간적으로 암보가 끊기는 경험은 누구나 겪는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도 무대에 서는 이유는, 그 순간만이 주는 전율이 있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난 후의 고요한 여운, 박수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 그리고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음을 느낄 때 그 모든 것이 이 길을 계속 가게 만든다.

반주자로서의 삶은 조금 더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연주자 옆에서 묵묵히 곡을 함께 완성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더 큰 자유를 느낀다. 상대의 호흡을 읽고, 감정을 따라가며, 음악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드는 과정은 마치 대화를 하는 듯하다. 그래서 반주를 할 때 나는 혼자서 연주할 때보다 더 섬세하고, 더 집중하게 된다.

물론 슬럼프도 많았다. 실력에 대한 의심, 연습에 대한 회의, 음악이 정말 내 길인지에 대한 질문. 그러나 그런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하나의 진실을 배웠다.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나다운 순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 무대 위에서든, 연습실에서든, 내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지금도 가끔은 이 길이 외롭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음악은 내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나의 언어이며, 삶을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 어제보다 더 나은 소리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음악을 위해.